Continuity - Short stories


Continuity
lavvyan
Summary: 희망이란 가장 잔혹한 감정이다. 








식탁 위에는 얼룩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셜록의 실험 기구들은 싱크대 밑에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실험할 때만 꺼내서 쓰고, 다 쓰고 나면 제자리에 다시 넣어 두었다. 최근 몇 주간 냉장고 안에는 인체의 그 어떤 부위도 들어 있지 않았다. 꼭 실험이 필요할 때에는 바츠의 영안실로 갔다. 

셜록은 가지고 있던 책들 일부를 정리했다. 남은 책들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한 책장에, 신중히 정해진 순서에 따라, 칼 같은 일렬 종대를 자랑하며 꽂혀 있었다. 셜록의 사건 파일은 그의 침실 벽에 쌓아 놓은, 저마다 라벨 하나씩을 단 박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윗층 침실 또한 그 어떤 군인이라도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벽난로에 놓여 있던 해골도 사라졌다. 편지에 박혀 있던 나이프도 없어졌다. 모든 접시는 깨끗하게 닦여 반짝거리고 있었다. 

셜록은 확 달라진 플랫의 풍경을 존이 아주 마음에 들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존이 플랫에 다시 돌아와서 그걸 본다면, 말이다.

~~~

"어제 약혼 반지를 줬더구나." 마이크로프트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존이 플랫을 나간 후 그는 존의 안락의자에 한 번도 앉은 적이 없었다. 셜록은 그것을 마이크로프트의 배려라고 생각해야 할지에 대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우산의 부드러운 손잡이에 손을 뻗었다. 그가 갑자기 셜록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었다. 

"다른 플랫메이트를 찾아 주마, 셜록." 마이크로프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셜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뻔한 대답을 굳이 입에 올리는 건 그의 성격이 아니었다. 

~~~

위층에서 악몽을 꾸는 존의 신음 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 밤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 이토록 중요한 것이 떠나가려 한다는 걸, 그 직전까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어느 정도로 지능이 낮아야만 가능한 일일지, 셜록은 매우 궁금했다. 대량으로 출혈하고 있는 환자를 코앞에 두고 그의 심장이 곧 멈출 거라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의 멍청한 짓일지도 모른다. 

사실, 셜록은 네 장의 니코틴 패치가 붙어 있는 팔뚝을 감싸쥐고 천정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 둘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똑같다고.

~~~

다음날, 셜록은 남은 패치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존은 언제나 니코틴 패치를 쓰는 걸 단호히 반대했고, 셜록 역시 자신에게 있어 구제 불능의 중독은 한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


Criterion 바에서 만나자. 내일. 8시 괜찮아? 
JW

그 시간이라면 존이 병원에 출근하기 전이라는 걸 셜록은 알고 있었다. 존의 생활은 훨씬 규칙적으로 변했다. 존은 곧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것이다. 
 
답장을 보내는 셜록의 손가락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혐오스럽게도. 

그래. 
SH


~~~


존은...아주 좋아 보였다. 피곤해 보이지도 않았고. 혈색도 건강하고. 셜록은 24시간 내내 피곤해 보이는 존의 얼굴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언제나 피곤해하는 존에게 익숙해져 있었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존," 몇 주만에 처음 만난 존이었지만, 셜록은 마치 오늘 아침에도 둘이 함께 식사를 했던 것처럼 심상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셜록." 존이 대답하며, 미소지었다.  

예전에도 존이 그에게 웃어줄 때 셜록의 심장은 이렇게 빨리 뛰었던가?

"무슨 일이지?" 셜록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무 퉁명스러웠나 보다. 존의 미소가 살짝 옅어진다. 셜록의 심장이 움츠러든다. 

"네 도움이 필요해, 셜록." 존은 몸을 돌려 셜록이 마실 커피를 주문했다. 블랙으로. 설탕 두 개. 컵을 감싼 존의 손은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손을 떨고 있지? 기분이 좋을 때 존은 손을 떨지 않았다. 지금 행복하지 않단 말인가?


셜록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커피잔을 노려보았다. 셜록은 이미 몇 번이나 존의 전화를 무시해 버린 후였고, 이렇게 마주앉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셜록에게 도움을 청하며 손을 떨고 있는 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위가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줄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셜록의 몸이 각 신체 부위별로 제멋대로 생각이란 걸 갖게 된 거지? 존은 곤경에 빠져 셜록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깨소금 맛이라고 고소해하는 게 당연했다. 지금처럼 불편해할 이유가 없었다. 


"오, 당연히 그렇겠지."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어쩌면 셜록이 의도한 만큼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데 성공한 것 같기도 했다. 

"정말이지, 여전하군." 존은 한숨을 쉬었지만, 다시 미소짓고 있었다. 

셜록이 마주 웃어주지 않으려던 시도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

존이 의뢰한 사건은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병원에서 물품을 횡령하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경찰과는 되도록이면 연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소문이 날 거고," 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병원은 그걸 감당할 수 없어." 

'우리' 셜록은 마음 속으로 되풀이했다. '사라의 병원'이 아니라 '우리'.

"그 창고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건 사라뿐이고," 셜록이 말했다. 존은 어쨌거나 그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자네의 봉급만으론 둘이서 사라의 플랫을 유지할 수 없겠지."

명백했다. 지루할 정도다. 

"언제나 그렇지만, 네 말이 맞아." 존은 시인했다. 그의 입끝이 살짝 올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셜록의 상상일까?

셜록이 자신이 추리한 내용을 정리하기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이보다 훨씬 흥미로운 범죄 사건을 맡게 된 레스트레이드였다. 

"다른 직원들에 대해서도 들어야 해." 셜록은 일어나며 말했다. '플랫에서 얘기해.' 그는 덧붙이고 싶었다. '냉장고에 우유도 있어. 내가 차를 끓여 줄게.'

"그래." 존이 말했다. "그럼 여기서 다시 보자. 언제가 좋을지 말해줘."

셜록은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떴다. 

그는 정말이지 하나도 실망하지 않았다. 

~~~

셜록은 테이크아웃해온 음식 상자들을 부엌과 거실에 잔뜩 어질러 놓았다. 존이 플랫에 온다 해도 무슨 상관인가? 셜록은 더 이상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존은 그의 부재가 셜록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셜록은 결국 음식 상자들을 치웠다. 혹시라도 존이 다시 플랫에 온다면, 그는 셜록이 기꺼이 존을 위해 자신을 개선할 의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

존은 플랫에 오지 않는다. 

~~~

그들은 두 번 더 만났다. 한 번은 존이 셜록에게, 병원 직원들과 그들이 고용된 시기에 대해 이야기해주기 위해. 또 한 번은 셜록이 존에게, 원무과 직원은 사실 사라의 이복 언니로 아버지가 그들 모녀를 떠나 버린 원인이 된 여자의 딸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

"명백하지." 정말이지 뻔한 사건이었으므로, 셜록은 덧붙였다. 모두들 우둔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대단해," 존은 감탄했고, 셜록은 하마터면 우쭐할 뻔했다. 존이 뭐라고 말하던 그와 무슨 상관인가. 존은 그를 떠났다.   

존이 무슨 생각을 하던 셜록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별 거 아냐." 셜록은 대답했고, 갑자기, 더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들이 여전히 플랫메이트인 것처럼, 친구인 것처럼, 동료인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존이 그를 남겨 두고 떠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그가 존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할 수 없었다. 

전혀 힘들지 않다는 것처럼...행동할 수 없었다. 

"실례하겠네." 셜록은 마지막 남은 이성을 부여잡고 매우 정중하게 말했다. "나는..."

그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가 없었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바라는 건, 더 이상 여기 없다. 

"셜록!" 존이 뒤에서 불렀지만, 셜록은 무시했다. 

적어도 그건 셜록이 아주 잘 하는 것이었다. 

~~~

그는 플랫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어차피 존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바닥에 표지가 찢어진 책 수십 권이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셜록에게는그가 존과 플랫을-인생을- 공유하면서 저지른 수백 가지의 잘못을 개선하고 싶은 생각 따윈 전혀 없으므로, 수십 개의 시험관과 비커가 깨져 나뒹구는 것 또한 전혀 문제는 되지 않는다. 다시는 존과 친구 사이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존의 침대-아니, 위층 침실 침대 매트리스를 난도질하는 것 또한 전혀...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상관없다. 그 어떤 것도 아무 의미도 없다. 셜록이 그렇게 할 것이다. 

그 난장판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만큼 셜록이 비참했던 적은 없었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유일한 것, 희망. 가장 잔혹한 악마들보다도 더 가혹한 감정. 

그 희망을 갖지 않으려고 애쓰며, 남자는 울었다. 

~~~

"약혼 반지는 되돌려줬다고 하는구나." 마이크로프트가 말한다. 

"존은 누나네 집으로 들어갔단다." 마이크로프트가 말한다.

"오 제발, 셜록, 존에게 돌아오라고 하렴." 마이크로프트가 완전히 지친 목소리로 말한다. 

셜록은 활로 바이올린 현을 공격하고 있었다. 명확한 거부. 

"네가 지금 아주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아 둬라." 마이크로프트가 경고한다. 

존은 셜록이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을 만큼 구제 불능이었기 때문에 플랫을 나갔고 사라는 다정했으며 그 둘 중 어느 누구도 이 모든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상처받은 한 사람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짓이었고, 돌이킬 수 없다. 셜록은 다시 한번 상처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서 영국이나 구하시지." 셜록은 말했다. "형 보고 와달라고 한 적 없어."

마이크로프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난 불청객이었잖니." 그는 불필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그리고, 셜록을 혼자 남겨두고 떠난다. 

하지만, 셜록은 정확히 말해서 [혼자] 남기를 원했던 건 아니었다. 

~~~

셜록은 삼일 밤낮 동안 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사건에 매달려 있다가 범인의 흔적을 쫓아 맨체스터에 와 있었고, 피곤에 지쳐 쓰러지기 전 그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자기 보호 본능은 일순간 해제되고 만다. 


자네 열쇠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
SH


~~~

존의 답장이 왔을 때 그는 낡아빠진 호텔 방에서 정신없이 잠들어 있었다. 

~~~

이런 빌어먹을, 내 매트리스에 무슨 짓을 한 거야? 
JW


~~~

식탁 위에는 얼룩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셜록의 실험 기구들은 싱크대 밑에 정리되어 있었다. 책들은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한 책장에, 신중히 정해진 순서에 따라, 칼 같은 일렬 종대를 자랑하며 꽂혀 있었다.

존은 벽난로에 다시 해골을 꺼내놓았고 셜록의 사건 파일은 거실 구석에 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우유가 들어 있었고, 커피 테이블에는 김이 오르는 차 두 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셜록은 우두커니 현관에 서서 눈을 깜박거리며 이 모든 광경을 머릿속에 담는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존의 랩탑, 존의 안락의자 위에 걸쳐져 있는 존의 자켓, 해골 옆에 놓여 있는 존의 핸드폰. 그의 얼굴은 분명 웃고 있을 테지만,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은 매우 불안하게 느껴진다. 

"사건은 어떻게 됐어?" 존이 묻는다. 그의 눈동자 색깔이 지나치게 밝다. 그는 약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린 둘 다 고집불통이지," 셜록이 말한다. "명백하군."

"명백하게." 존이 동의한다. 그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몸을 기댄 채 완벽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Welcome back," 셜록이 부드럽게 말한다. 

"Welcome home," 존이 대답한다. 셜록은 다시 눈을 깜박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계속 있을 거지?" 질문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타이밍이지만, 그는 확신을 얻고 싶다. 그래서 묻는다.

"네가 원한다면."

"구제 불능의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싫다고 할 리가 없잖아," 셜록은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 이젠 존이 눈을 깜박일 차례였다. 그리고 존은 밝고, 확실하게 미소지었고, 셜록은 자신의 가슴께에서 미니 사이즈의 초신성 하나가 조용히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넌 구제 불능의 멍청이잖아." 존이 지적했다. 셜록은 가까이 다가섰고, 둘의 입술이 맞닿기 직전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기 전에 존의,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낡아빠진 점퍼를 단단히 움켜쥐는 걸 잊지 않았다. 

~~~

만약 셜록에게 보물 상자가 있다면-그는 가끔 생각한다-거기 담겨야 할 건 존밖에 없다. 

그는 다시는 그를 떠나 보내지 않을 것이다. 

~~~






덧글

  • 2013/03/26 20:1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r feather 2013/03/29 10:55 #

    그렇지요!!! 이런 따스한 글 좋습니다ㅇ<-< 이분의 다른 글을 읽어보고 있는데 수위글이면 살짝 존 top의 느낌이 있으시더군요. 그쪽에는 감히 손을 뻗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번역하고 싶은 예쁜 글들이 잔뜩 있답니다! 말씀하신 차 두잔 장면은 번역하면서 제 가슴이 막 설레고 눈물이 나고?ㅠㅠ사실 존이 빌어먹을 내 매트리스 셜록!!!!하고 문자를 보낸 장면에서 저는 이미 기절했습니다. 흑흑.
    비루한 번역으로 원문을 망치면 안 되는디ㅠㅠ사실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도 복잡-_-해서 엄청난 의역을 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언제 꼭 원문도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오늘도 큰 기운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입력 영역